top of page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민규비_제출.png
우사관두루마리이이.png
발밤발밤
민규비_두상_우사_우사.png

민규비閔揆備

빈바리 태생 | 여성

인간 | 20세

150cm | 35kg 

우사관무늬
외관
외관

왜소한 덩치와 작은 키, 앳된 외모에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10대 중반으로 보는 이들이 많아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한다. 몸이 더 가늘어져 누가 봐도 말랐다고 생각할 정도. 평범한 사람들보다 살이 무르고, 쉽게 다쳐 멍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흰 피부는 아주 얇아 당황할 때마다 속절없이 붉은 기가 올라온다.

잘 관리된 곱슬머리는 어느덧 엉덩이 위까지 길렀다. 왼 손목에는 신기인 염주 팔찌를 하고 있다. 5학년 방학 특재청에서 받은 팔찌는 방학 전 풀어버려 더 이상 없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어두운 흑안을 가지고 있다. 초점이 없어 보일 만큼 진한 색이고, 깊다. 도수가 아주 낮은 동그란 안경은 안경 줄을 연결해 목에 걸거나, 가방에 넣어서라도 늘상 챙겨서 다닌다. 그러다가 글을 읽을 일이 생기면 꺼내서 쓰곤 한다.

친구들에게 받은 물건 하나하나 몸에 지니고 다닌다. 네잎클로버 모양에 나비와 규비의 눈 색이 콕콕 박힌 목걸이는 몸에서 떼놓는 법이 없다. 왼쪽 귀에는 지원이와 맞춘 꽃이 달린 붉은 리본 귀걸이가, 머리카락에는 은하에게 받은 붉은 꽃이 달린 머리핀이 자리한다. 산사에게 받은 우사관 키링과 예화에게 받은 부적 주머니는 가방에 나란히 달아두었다.

늘 가지고 다니는 가방에는 낙랑에게 받은 쫀득한 현무 인형, 예화와 맞춘 거울 같은 잡동사니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너무 소중한 일부분. 탈은 작게 줄여 가방의 손잡이에 달아두었다.

모서리_우사.png
모서리_우사.png
노리개_안녕제다.png
노리개_기다림의미학.png
우사일등2.png
노리개_우사우승2.png
노리개_인명구조원.png
노리개_루프를.png
노리개_루프끝이다아아아아.png
이빈 노리개.png

[ 할 말 다 하는 겁쟁이 ]

 

겁이 많은 것은 타고난 것이라, 여전히 고치지 못했다. 아직도 툭하면 눈물이 나고, 어두운 곳에 혼자 다니지 못하며 벌레를 보면 기겁을 한다. 기가 센 사람에게 눌리는 것도 여전하다. 그러나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예전처럼 도망치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고장 난 수도꼭지 같이 나오는 눈물은 제 의지로 멈출 수 없지만, 행동만큼은 스스로 조종할 수 있다.

자고로 분쟁을 피하려면 어느 정도는 하려는 말을 숨길 줄 알아야 하는데,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되어도 그녀는 제 할 말은 다 해야만 했다. 눈치가 없는 것인지, 그저 자제력이 없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성격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시비를 자주 걸리는 것 같다.

 

 

 

[ 상냥한 / 맺고 끊음이 확실한 ]

 

정이 많아 타인에게 쉽게 휘둘리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착한 사람'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저를 함부로 대해도 어느 정도는 끊임없는 애정을 주고, 계속해 곁에 있고자 노력한다. 주변인에 대한 애정이 깊어 좀처럼 놓지 못한다.

그러나 전처럼 멍청하게 어떤 일이 있어도 웃어넘기기만 하지 않는다. 역치가 높은 편이지만, 제대로 화도 내고 남을 미워할 줄도 안다. 아마 학도관에서 마지막으로 배운 것은 모질게 마음을 먹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3학년 때의 일 이후에도 비도교를 제대로 미워하지 못하고 동정했다면, 비도교 참사와 사감님들의 죽음이 완전히 그들을 미워할 수 있게 했다. 제 노력으로 회복할 수 없는 관계라고 판단될 경우, 어떻게든 붙잡고 있으려 하던 전과는 달리 포기하는 경우도 생겼다.

 

 

 

[ 숨김없는 / 이성적인 ]

 

감정 표현이 솔직하고 풍부하다. 시시때때로 표정이 변화하고, 쉽게 기분 상태를 읽을 수 있다. 연기 실력은 늘 수준급이지만, 굳이 속마음을 숨기려 들지는 않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감정이 앞서던 예전과 달리, 꽤나 이성적인 편이다. 두려움에 발이 묶이지 않고, 동정심에 무리를 행하지 않는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감정 표현의 폭이 넓지만, 감정으로 인해 중요한 일을 그르치는 경우는 없다.

모서리_우사.png
모서리_우사.png
성격
성격

흑호안석으로 만든 염주 팔찌.

불교 신자인 외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다 선물로 받았다.

본인은 무교. 줄이 많이 낡아 방학 동안 한차례 교체했다.

모서리_우사.png
모서리_우사.png
신기
신기
기타

민 규비

헤아릴 규 () , 갖출 비 ()

3월 3일생, Rh- A형

 

 

<가족>

 

과거에는 엄마와 함께 서울에서 거주했으나, 엄마의 재혼 이후에 현재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경주에 거주 중이다. 외갓집이 운영하는 "김옥례 감자 칼국수" 가게는 꽤나 유명한 맛집으로, 인터넷에서도, 입소문으로도 평이 아주 좋다. 비도교 참사 이후로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최근 이모네 집이 다시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연세도 연세이신 만큼 가끔씩만 가서 도와주시는 중이다. 예전보다 맛이 덜하다는 단골들의 평이 있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평은 좋은 편이다.

그녀가 외할머니네 집에 오며 "백조"라는 이름의 미니피그를 키우게 되었다. 12년을 꼬박 동고동락했고, 방학식 직후인 열아홉의 끝자락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골함은 방에서 보관 중이다.

1학년의 막바지, 은하와 함께 숲에서 새 알을 발견해 부화시켰다. 눈이 시리게 파란 새로, 이름은 백조 다음의 "천조"로 은하가 지어줬다. 백조를 보낸 이후, 은하에게 천조를 잠시 돌봐줄 수 있겠냐고 부탁한 후 현재는 함께 살고 있지 않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하셨다. 그 이후 7살까지는 엄마의 손에서 자라다가 7살의 겨울, 외갓집으로 오게 되었다. 부모님은 각자 재혼 후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고 계신다. 아주 가끔 얼굴을 보는 정도라고. 배우를 제멋대로 관둔 후 엄마와의 관계가 꽤나 소원해졌다.

이모네 가족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하며 근처에서 살게 되었다. 부모님의 가정보다는 오히려 친척들과의 왕래가 잦다.

 

 

   

 

<아역배우>

 

6살 "민소예"라는 이름으로 아역배우 생활을 했다. 어린 나이에 처음 찍은 드라마 한 편만으로 스타덤에 올라 어린 나이답지 않은 연기력으로 한 번, 엉뚱한 행동들로 두 번 유명세를 치렀다. 이후 약 일 년 반의 시간 동안 드라마와 예능에서 쉽게 얼굴을 볼 수 있었으나, 7살의 여름 한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이제 방송 안 할래요."라는 말을 끝으로 돌연 방송계에서 모습을 감췄다.

위의 장면은 재가공되어 현재까지도 인터넷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짤방이 되었으나, 흐른 세월의 흐름만큼이나 풍화되어 짤방만 보고서는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를 알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얼굴만큼은 아역배우 시절에서 그대로인데, 어릴 때와는 달리 안경을 껴서인지 한 번에 알아보기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인터넷 플랫폼에서 쉽게 얼굴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방송사에서 해당 드라마의 편집본을 종종 올리고 있어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한 일반인으로서의 삶을 살았기에 아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한때는 그녀의 SNS 계정으로 추정되는 아이디가 떠돌았는데, 그나마도 금방 삭제되었다.

 

 

 

<14살 - 16살>

 

처음 향천 학도관을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모르는 세계에 대한 동경보다는 두려움이 큰 상태였으나 어찌저찌 3년간 끝내주게 적응한 상태이다. 향천학도관이 아닌 곳과, 학도관 내부에서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학도관 내에서는 이전보다 많이 당당하고, 눈치를 살피는 일이 줄었다.

방학 동안은 활발하게 친구들을 만나러 가거나, 도심지로 가 일탈을 경험하는 일이 많았다. 스스로 만든 것들을 선물로 졸업 전에 하나씩 안겨주고 싶다고 한다.

16살의 여름, 집 근처의 횡단보도가 없는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 크게 다친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병원에서 그녀는 말 그대로 대성통곡을 하며 난리가 났고, 그떄 누군가가 이 영상을 찍어 민소예 근황이랍시고 배포하는 일이 있었다. 학기 중에는 외부와 단절된 상태여서 그녀조차 알지 못했지만, 방학식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 휴대폰에 친구들로부터 잔뜩 도착한 문자로 그간의 일을 유추할 수 있었다. 도력 폭주 사건과, 위의 일이 아우러져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은 대부분 집에만 콕 박혀 생활했다.

 

 

 

<17살-19살>

 

18살 방학이 끝나기 직전 일어난 비도교 참사에 할머니가 휘말리셨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했음에도, 등잔모래길에서의 악몽으로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비도교의 탓이라며 원망하기보다는, 제가 옆에 있어서라는 죄책감이 크게 들어 병원에도 가보지 않고 도망치듯 학교로 왔다.

졸업 직전, 날이 서서히 쌀쌀해지기 시작했을 때 선생님들의 죽음을 눈으로 목격했다. 그것은 분명 저 때문은 아니었다.

열아홉과 스물의 사이, 백조가 세상을 떠났다. 종양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나이가 많아 수술도 불가능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켜주었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함께했다. 유골함은 다른 곳에 차마 보내지 못하고 침대 옆 한 켠에 간직하고 있다. 여전히 백조가 사용하던 물건을 하나도 정리하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방에 틀어박히다 기분 전환과 마음 정리 의도로 잠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이 시국이지만, 뭐 어때!

 

 

 

<이외의 이야기>

  

- 요리를 곧잘 하는 편이다. 최근 들어 베이킹을 많이 하고 있다. 많이 굽고, 많이 먹자는 취지였지만 저가 먹는 것보다는 주위에 주는 양이 더 많다.

- 손재주가 좋아 이것저것 잘 만들어낸다. 바느질도, 뜨개질도 꽤나 수준급. 이번 방학에는 나비에게 줄 목도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

- 운이 나쁜 편이다. 생명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자질구레하게 재수가 없는 편. 

- 주변에 도사가 없다. 빈바리 집안에서 태어났고, 학도관에 오기 이전의 친구들도 모두 빈바리. 학도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녀가 도사임을 아는 것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백조와 천조 정도이다. 선생님들의 사망 소식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천기인의 폭주에 대해서도 굳이 가족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집에 안전히 있자고만 연신 반복해서 말할 뿐.

-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채식의 날을 갖는다. 꼭 이 날이 아니더라도, 돼지고기는 잘 먹지 않는다.

-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방학 이후 얼마간 방에 틀어박혀서 휴대폰을 하느라 나오지 않았다.

- 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휴대폰을 하자 눈이 조금 나빠졌다. 그래도 심하지는 않은 수준인지라, 글을 읽을 때가 아니면 거의 안경을 벗고 있는다. 안경은 아무렇게나 주머니에 넣어 다니거나, 안경 줄에 매어 목에 걸고 있는다. 목걸이와 엉키는 것이 성가셔 보통은 따로 챙겨 다니는 편.

- 방학 직후 집에 틀어박힌 한달간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 살이 급격하게 빠졌다. 현재는 찌우느라 하루에 억지로 네 끼씩 챙겨 먹는 중.

모서리_우사.png
모서리_우사.png
기타
노리개_흑관.png
노리개_흑관.png
노릐개학교.png
노릐개학교.png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