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생같은건
용납 못해요.



이연감호

김이연金犁然
찬바리 태생 | 남성
요괴: 호랑이요괴 | 20세
188cm | 77kg


외관
검고 긴 머리카락에 동공 주위로 붉은기가 조금 도는 눈동자는 여전히 푸른 빛으로 형형하게 빛났다. 길게 풀어내렸던 머리카락은 조금 더 길이가 길어 끝 부분을 느슨하게 묶었다. 검고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 등이 돋보이는 조금 진한 인상. 짙은 녹색 두루마기는 한 쪽만 걸쳤으며, 신발과 바지는 현대식의 것을 입었다. 오른쪽 소지에 율도관 반지를, 오른쪽 검지에 강아지-호랑이의 화합을 도모하는 구리색 반지와 나비가 준 펜던트로 만든 팔찌를 꼈다. 자신이 호랑이라는걸 모르는 빈바리들과 어울릴 때에는 도술로 머리를 짧게 만들거나 안경을 쓰기도 한다. 본질적으로는 200kg이 넘는 성체호랑이의 모습.







[寂然不動]
예전보다는 풍부해진 감정표현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침착하며, 차분하고 조용한 편에 가까웠다. 소심하거나 목석같은 심성은 아니여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모자람 없이 누군가의 말동무가 되곤 하거나, 좋은 생각이 있다면 똑똑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곤 했다. 방에 바퀴벌레가 나오면 비명을 지르기보다는 조용히 이불과 베개를 들고나와 한 달은 집에 돌아가지 않는 타입.
[謙讓之德]
더이상 만면에 미소를 띠는 표정은 아니였지만 태도만큼은 꾸준하게도 누구에게나 예의바르며 친절했다. 자신은 그것이 신임을 위한 처세라고 스스로 여겼지만 여전히 친구들에게 다정하게 대하거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스스럼 없이 다가가는 것은 어쩌면 처세가 아닌 조금 더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吐盡肝膽]
몇년간의 유대는 그를 솔직하게 만들었다.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게 되었고,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그것을 숨기지 않고 내비쳤으며, 더이상 억지로 웃지 않았다.
여전히 존대를 사용하지만 간간히 말을 놓기도 하는 등 조금 편해진 말투가 가장 큰 증거였으며, 어쩌면 이전에 비해 조금 차가워졌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태도는 역설적이게도 다른 이들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에 내비치기 시작한 자신의 진실되고 미숙한 인격이었다. 예의 온화한 미소는 더 이상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만약 그가 드물게 웃는다면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격
옥이 세공된 호갑투.
이제는 이연의 손가락에 꼭 맞는 크기가 되었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옛날처럼 호랑이 엄니로 된 펜던트 위에 겹쳐 목걸이 형태로 소지한다.
천도식 이후 끝을 날카롭게 벼려놓았다.


신기
기타
[감호의 후손]
<김현설화>에서 신라시대 김현과 부부의 연을 맺었던 감호(感虎), 호랑이 요괴의 후손. 감호의 후손들이 도사들의 세계에서도 자취를 감춘지 백 년 쯤 지난 현재, 이연의 향천학도관 입학으로 돌연 다시 모습을 나타내었다. 명목적으로는 산에 호랑이가 없어서, 도력폭주의 우려 때문에 입학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연의 입학 이면에는 현대화가 이루어진 이래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잊어버린 어리석은 인간들이 신선이 되기 때문이라는 감호들의 의견이 있었으며, 이들은 이를 막기 위해서 인간 뿐만 아니라 자연 역시 헤아릴 줄 아는 호랑이들 사이에서도 신선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 김이연]
정시로 수의학과에 가까스로 붙어 들어갔다. 이후 산에서 나와 자취중이며 그간 인간인 친구들과 오래 어울린 탓에 어려움 없이 빈바리들 사이에서 적응하는 중이다. 자신의 긴 머리카락이나 날선 인상이 주의를 끌까 염려해 빈바리들 사이에서는 도술로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니거나 안경을 쓰고 다닌다. 현재 도력폭주로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공부하고 있다.
[개박하 보다는...]
싫어하는 것은 벌레, 죽음이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 곶감(실제로 심하지 않은 감 알레르기가 있다고 한다.), 허락없이 자신을 만지는 것, 자연을 더럽히는 것, 무조건적인 희생, 비도교.
좋아하는 것은 갓 쪄서 따끈따끈한 떡, 다과, 목욕, 가족, 끝내주는 말장난농담, 개박하, 인간을 포함한 친구,
[사랑에 대하여]
호랑이들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기에 생명을 쉽게 포기하는 것은 아니였으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면 차라리 사랑하는 이의 손에 목숨을 거두는 것이 호사였으며,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면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고통스럽지 않게 거둬줌으로써 애정을 베풀었다.
항상 삶과 죽음을 인간보다 직접적으로 목도하는 그들에게, 그리고 스스로 사랑하는 이에게 목숨을 거둬지는 것을 택했던 감호의 후손인 그들에게 이 희생을 곧 사랑으로 부르곤 했다.

